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가 있던 한인 애국단을 이끌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보다 일제가 건 현상금이 높았던 그 사람

일제 강점기 일제가 두려워했던 그 인물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그는 의열단의 단장이었다.

의열단은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김지섭의 도쿄 궁성 폭탄 투척

나석주의 동양척식 주식회사, 조선 식산은행 폭탄 투척

이처럼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제에 대항하였다,

 

 

 


그 후 김원봉은 항일 무장단체 조선의용대를 이끌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선의용대는 한쪽은 옌안에 가서 

조선 의용대 -> 화북지대 -> 조선의용군 해방 후 북한 인민군에 편입된다

 

 


또 다른 한쪽인 조선의용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이때 김원봉은 한국광복군에 부사령관이 된다.

 

 



해방된 조국에 들어온 김원봉

몇 년 뒤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당하고 고문을 겪고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한다.

김원봉은 이 일을 유석현 선생 앞에서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내가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

라고 하면서 통곡을 했다.

 

 

 

 


김원봉이 월북하기 전에 좌우합작 운동을 하던 여운형이 암살당하였다. 

김원봉은 임정 군무부장이던 시절 비서에게 편지를 보낸다.

"북조선을 그리 가고 싶지 않지만 남한의 정세가 너무나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구나 "

여운형이 암살을 당한 저 당시 상황과 저 편지를 보면 당시 김원봉이 월북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후 남북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입북하고 그는 남측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6.25 전쟁 전에 김원봉은 남침을 반대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때 당시 김원봉의 가족은 남쪽에 있었음)

 

결국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남쪽에 있던 김원봉 가족은 남쪽 군경에게 학살당하고

막내 여동생만 살아남았다.

6.25 전쟁 때 식량을 담당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남측에 간첩을 보냈다

북한에서 공로가 인정되어 북한 노동상, 북한 국가검열상, 북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김일성이 옌안 파를 숙청할 때 김원봉도 같이 숙청되어

북한에서 유명을 달리하였다.

 

 

 

 

 

월북 후에는 우리의 적이었던 것도 맞고 북한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월북 전에 한반도를 위해 힘써왔던 업적은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월북 전과 월북 후를 나누어서 평가를 해야 된다.

해방 후와 월북 전에 김원봉이 당한 일과 있던 당시 남한에서 위치를 보면 "그를 월북을 하게 한건 남한이지 않았나?" 

라고 생각된다.

월북전에도 빨갱이라고 하는데 

미군정청의 전사 편수관이었던 리처드 로빈슨은 "김원봉은 우익과 좌익 사이에서 화해를 주선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였고 김원봉은 공산당에 가입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했고 그와 여운형은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중도파였기에 공산당의 전체주의와 소련의 권위를 거부했다"

 

월북전의 김원봉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를 버린 건 남한이었고 다시 한번 버린 건 북한이었다.



 

 

 

나누어서 평가하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 있을텐데

 

이건 야당에서도 구분해야된다고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8CpAhxYObw

( 2분 7초 )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야당 여당 편을 드는게 아니다.

 

어딘가에 치우쳐서 보지말고 객관적으로 보라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한쪽에 치우쳐서 다른한쪽은 그냥 마음에 안드니 독립운동을 깍아내리기 바쁘고

 

다른한쪽은 우리나라 법상 북한정권 수립에 공헌한 사람은 받을 수 없는데 그거 할려고 그러고

 

이러기에 말하는거다.

 

 

 

일제가 김원봉에게 내건 현상금이 현재가치로 320억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보다 많다.

 

독립운동가로서 위치도 있었고 뛰어난것도 맞지만

 

그렇지만 서훈은 우리나라 정해진 룰에서는 북한정권 수립에 공헌하였기에 받을 수 없는거다.

 

 

 

현충일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신 대통령님도 좀 섣부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차라리 광복절이나 3.1절에 이야기를 꺼내지.

 

 

 

무튼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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